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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반려하는 법마음 2021. 3. 12. 01:26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자각한 지 10년 째.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은 이를 싸워 이겨내고, 내 삶에서 완전히 추방시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에 썼다. 물론 매번 처참히 실패했지만. 기억도 없는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 까지 각인된 긴 세월은, 담뱃불 끄듯 문질러 끌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나의 일부였다. 나를 파괴할 것 같이 미치게 만드는 감정들에 굴복하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앞으로 잘 해보자고 화해하는 것 만으로도 정말이지 힘들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지는 불과 이 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제 시작인거다. 우울증을 반려하는 지난한 삶의 시작 말이다. 이렇게 우울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고 어렴풋하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찾아오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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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말고 '왜' 하는가일 2021. 2. 21. 10:57
이전 글에서 적었듯이, 이번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어서 일요일만큼은 비워두고 싶었다. (나의 원대한 계획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출근하고, 필요하면 휴일 3일 중 하루를 써서 잔업하는 건데...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다음주 월요일 면접에 대비해서 주말 중 모의면접을 희망하신다는 고객님께, 최대한 토요일을 권유드렸다. 내가 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건 아니고, 실제로 면접에 너무 임박해서 모의면접을 볼 경우 피드백을 받고 멘붕하는 경우가 생겨서 그랬긴 했다. 그런데 고객님께서 토요일은 학교 졸업식이고, 최대한 모의면접도 열심히 준비하고 싶다며 그 날 밤을 새워 준비할테니 일요일 오전에 꼭 부탁드린다고 말씀하셨다. 일요일을 무조건 비워놓겠다는 마음이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컨설팅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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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야근, 지금의 야근일 2021. 2. 20. 21:32
비교해보면, 회사를 다닐 때보다 일에 몰입하는 시간은 훨씬 더 길어졌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일이 없는 날이면 앉아서 놀다가 집에 갔다. 반면 혼자 일을 하면서는 식사 시간과, 50분 일한 뒤 가지는 10분 쉬는 시간 이외에는 늘어지는 시간이 없다. 정해진 월급이 있던 시절과 다르게, 내가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 통장에 꽂히는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은 더 힘들어도 마음은 더 가볍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 나의 선택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납득이 되니, 짜증나거나 귀찮지 않다. 도저히 수용 한계를 넘어서면 들어오는 일을 거절할 자유도 있다. 그렇게 내가 스스로 정한 바운더리 내에서 벌린 일이니, 전처럼 억울하지 않다. 과거엔 야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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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가운데 응원을 받았다일 2021. 2. 19. 17:54
이번주는 유독 힘들었다. 사무실에 12시간 이상 남아있는 날이 더 많았다. 프리랜서 특성상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해서, 최대한 수용 가능한 범위의 일은 다 받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마감일도 맞추고, 동시에 일을 대충 급하게 처리하지 않으려면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 원래 오늘은 쉬는 날인데 어제 마치기로 한 일을 미처 끝내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출근했다. 그러던 와중 수요일에 모의면접을 도와드린 분이 면접 결과를 받아보고 리뷰를 남겨주셨는데, 뉘앙스를 보니 합격을 못 하신 것 같았다. 별 말씀은 없으셨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컨설팅을 드렸던 분이 면접을 아주 잘 봤다면 연락을 주셨다. 너무 고맙다며 길게 칭찬도 해주시고 정성스러운 리뷰도 남겨주셨다. (심지어 이미 길게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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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설을 보내며마음 2021. 2. 14. 23:11
오늘은 R과 아빠네 집에 다녀왔다. 아빠와 새엄마가 R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인상이 선해보이고, 젓가락질 잘하고, 한식을 주는대로 잘 먹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 이상으로 우리는 깊게 대화하지 않는다. 아니, 그 무엇에 대해서도 우린 깊게 대화하지 않는다. 난 아빠에게 왜 이전에 살던 신축 아파트에서 더 살지 못하고 십년은 더 낡은 것 같은 곳으로 이사했는지 묻지 않는다. 아빠는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회사 다닐때에 비해 수입이 얼마나 줄었는지, 전세자금대출은 얼마나 갚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런 궁금증은 묻어두고 게장을 언제 담갔는지, R이 생선전을 먹을 줄 아는지 대화만 해도 시간은 금방 간다. 나의 신경은 온통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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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딩, 현재를 단단히 붙드는 방법마음 2021. 2. 11. 22:27
새벽 몇 시였는지도 모르겠다. 꺽꺽대며 울다가 번쩍 눈이 떠졌다. 어둠 속에 축축한 얼굴과 베개만 느껴지는데 동시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처럼 엄마에 대한 악몽에 흠뻑 젖었다가 깨면, 온 감각이 무뎌지며 몸이 얼어붙기 때문이다. 그럴 땐 웅크린 자세로 울음을 다 토해낼 때까지 견디고 또 견뎌내야만 했다. 영겁의 시간이 흘러 겨우 숨이 잦아들어야만 저지레는 끝이 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작지만 중요한 행동을 하나 더하기 시작했다. 모든 의지를 짜내서 어떻게든 침대 끝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불을 켜는거다. 주변이 환해지면 익숙한 침실 벽지도, 벽에 걸어둔 고양이 가랜드도, 이불 아래로 삐져나온 발끝도 보인다. 그러면 눈에 들어오는 색깔들을 속으로 되뇌기 시작한다. 벽지의 네모 무늬는 회색, 고양이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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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초의 일상gita 2021. 2. 10. 18:48
한달쓰기 10일차, 매일 하나의 주제를 파고드는 글을 쓰려니 힘이 부친다. 그래서 오늘은 가볍게 요즘의 일상을 기록하는 걸로. 이번 겨울에는 두 번에 걸쳐 폭설이 내렸다. 처음엔 설레고 신났는데, 두번째엔 방심하다가 눈폭탄을 맞아서 기분이 축축하고 별로였었다. 이 라이언 눈사람을 만나고선 기분이 싹 풀렸지만 말이다! 정확한 비율로 귀랑 뽕주댕이를 만든 것도 놀라운데, 눈이랑 눈썹은 이걸 위해 일부러 만들 줄이야. 뜨거운 열정과 엄청난 귀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누군가는 눈보라에 투덜거리지만 누군가는 신나하며 이런 걸 만든다. 마음만 바꿔먹어도 이런 걸 만들 수 있다. 입학 10주년을 맞아 친한 동기와 함께 모교에 들렀다. 학교 안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들을 돌봐주는 동아리가 있는데, 이렇게 집도 지어 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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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못해요일 2021. 2. 7. 18:34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뻥카’를 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겁도 없이 낯선 분야에 발을 쑥쑥 들이밀며 열정과 가능성을 어필했다. 해당 분야에 깊이있는 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관심은 엄청 많았고, 비슷한 다른 것들도 잘 했으니 이것도 잘 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거다. 그렇게 스펙만 떼놓고 보면 도저히 합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소개서 한 장으로 로스쿨을 뚫고, 종합상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막상 들어가보니 알 수 있었다. 입시와 취업은 첫 번째 관문일 뿐, 진짜 게임은 들어온 뒤에 시작한다는 걸 말이다. 말빨이 아니라 ‘진짜’ 실력과 적성을 내세워 들어온 경쟁자들이 성큼성큼 나아가는 동안, 난 원서를 넣기 전 했어야 하는 뒤늦은 고민들에 고통받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호된 경험을 통해 배운 건, 사회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