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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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얼굴마음 2021. 12. 30. 03:27
자고 있는 고양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꾸만 죽은 것 같아 귀를 대어본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리지만 그래도 죽음이 멀다는 건 아니다. 한때는 내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았던 아기가 이제는 열 살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산 시간만큼은 아마도 못 살겠지. 시간은 정직하고 또 혹독하다. 예전에는 사실 언제 어떻게 죽던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목숨이 너무 질긴게 원망스러웠고 떼어내려 백방으로 노력도 해봤지만, 생각보다 명을 재촉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근데 해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죽음을 생각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삶이 좋았고 꽤 행복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죽음이 두렵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을 한 번에 앗아갈 수 있고 또 비가역적인, 사람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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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마음 2021. 12. 21. 02:14
비가 살갗을 뚫을 듯이 세차게 내리지만 피할 곳이 없다.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한한 벌판에 서서 그 비를 묵묵히 맞는다. 비를 그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몸을 피할 작은 처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비가 내리는대로 맞으며 선명하게 아파하고 견뎌야 한다. 새벽에 두 번 거절을 했다. 하나는 크리스마스때 잡혀있던 가족 모임. 다른 하나는 고객의 작업 요청. 원만한 사회생활 내지는 돈과 직결되는 문제지만 내 능력상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었다. 최선을 다해 거절 문구를 길게 쓰고, 계속 읽고, 보내고 바꿀 수도 없는데도 계속 읽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고민하지만, 모든 일에 있어 그렇듯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아는 걸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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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꾸는 일마음 2021. 12. 20. 02:33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어디가 되었던 내가 매일 먹고 자는 집만 아니면 됐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한없이 멀리 멀리, 그래봤자 이 작은 나라에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남쪽 끝자락에 가서 며칠을 보내야만 마치 액땜을 한 듯 남은 일 년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어딜 가도 나라는 사람은 날 자꾸만 따라왔고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나에게 한 번도 편안함을 안겨주지 못한 그 장소와 의무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웃기지만 그렇게 멀리 가고 나면 얼마 가지 않아 집이 그립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익숙하고 나를 맞아주는 고양이들이 지키고 있는 그 집을. 그러고 막상 집에 가면 바닥을 구르는 먼지와 쌓인 설거지거리와 의자를 삼켜버린 옷더미를 보고 다시 가출하고 싶어진다. 끝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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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륜마음 2021. 11. 19. 19:40
https://youtu.be/AyQ9yHOnYo0 유튜브 첫 화면에서 추천해주길래 댓글 상태가 궁금해서 들어가보았다. 자식이 부모가 죽었는데 저런 소리가 나오냐는 댓글은 (최소한 상단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또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리고 각자 어렸을 때 느꼈던 공포에 대해 적어둔 댓글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참 고마웠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정서는 ‘가족 얘기는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지 밖에 꺼내봤자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거지’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난 아직도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 대해 물어볼 때 새엄마를 그냥 엄마라고 부르고, 아버지의 재혼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알던 나의 엄마와 지금 나의 새엄마의 소식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그걸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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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즉고마음 2021. 5. 24. 01:24
오늘 만난 친구가 난데없이 애를 낳고 싶다며 던진 말이다. 삶은 고통, 오직 고통이고 그 자체로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불가항력적인 삶의 의미를 만드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 것 같다고. 하나의 작은 생명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주는 것만큼 생물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만족감을 주는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근데 그런 연결은 혈육 간에만 가능하다고 믿어서 배우자를 통해 낳고 싶지는 않단다. 그래서 결론은... 난자 기증. (친구는 남자다.) 하지만 미혼부에 대한 시선이 아직 곱지 않으니, 그걸 아이가 견뎌내야 하지 않도록 사회가 더 성숙되면 낳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그렇구나. 우리가 처음 만난 십삼년 전에는 마치 세상을 바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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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도, 괜찮지 않아도 ‘나’마음 2021. 5. 3. 23:55
“아빌리파이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리셉터와 상호작용하며, ‘병식’이 있는, ‘비정신장애인의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약이었다. 그러나 그 신약이 전제하고 있는 ‘다른 나’의 ‘원래의 나’에 대한 우월성을 거부하는 운동이 바로 매드프라이드 운동이었다. 매드프라이드 운동가들에게 광기란 “나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질환’도 아니며, 내가 치료하길 원하는 ‘증상’의 집합체도 아닌, 내 정체성의 한 측면”이었던 것이다.” “매드프라이드 혹은 장애인운동의 핵심에는 정상성에 대한 거부가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긍정, 즉 손상된 몸과 다른 정신상태를 가진 나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움직임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정신상태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매드프라이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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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의 대가마음 2021. 5. 2. 23:43
여전히 많이 아프다. 우울을 나의 일부로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 능통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심장의 바닥부터 생살을 갉아먹히는 밤이면, 난 내 자신을 초연히 사랑하겠다던 결백한 의지를 코를 푼 휴지처럼 구겨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내가 무슨 대단한 성자라고 이런 걸 허허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난 나락으로 떨어진 저급한 인간의 얼굴로 침을 튀겨가며 외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 아니 하지 않았나. 왜 그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나. 왜 아무도 없었나. 속으로만 지르는 소리는 나의 내면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세포와 내장을 파고든다. 그런 밤에는 방충망을 박살내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천 번도 더 한다. 이것이 바로 내 자신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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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반려하는 법마음 2021. 3. 12. 01:26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자각한 지 10년 째.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은 이를 싸워 이겨내고, 내 삶에서 완전히 추방시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에 썼다. 물론 매번 처참히 실패했지만. 기억도 없는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 까지 각인된 긴 세월은, 담뱃불 끄듯 문질러 끌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나의 일부였다. 나를 파괴할 것 같이 미치게 만드는 감정들에 굴복하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앞으로 잘 해보자고 화해하는 것 만으로도 정말이지 힘들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지는 불과 이 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제 시작인거다. 우울증을 반려하는 지난한 삶의 시작 말이다. 이렇게 우울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고 어렴풋하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찾아오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밀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