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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얼굴
    마음 2021. 12. 30. 03:27

    자고 있는 고양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꾸만 죽은 것 같아 귀를 대어본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리지만 그래도 죽음이 멀다는 건 아니다. 한때는 내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았던 아기가 이제는 열 살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산 시간만큼은 아마도 못 살겠지. 시간은 정직하고 또 혹독하다.

    예전에는 사실 언제 어떻게 죽던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목숨이 너무 질긴게 원망스러웠고 떼어내려 백방으로 노력도 해봤지만, 생각보다 명을 재촉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근데 해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죽음을 생각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더라.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삶이 좋았고 꽤 행복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죽음이 두렵게 느껴졌다. 이런 감정을 한 번에 앗아갈 수 있고 또 비가역적인, 사람의 의지로는 돌려놓을 수 없는 일. 그게 언제 어디서 덮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곤히 자는 고양이의 얼굴을 보다가 반려동물의 임종에 대한 글을 찾아보고 밤을 새워 읽었다. 나보다 항상 먼저 잠드는 R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깨우고 싶지 않았다, 깨웠는데 일어나지 않을까봐. 그러다가 나까지 갑자기 주저앉아 죽어버릴 것 같아 너무 무서워서 웅크린채 잠들지 못했다.

    무언가 바꾸고 싶고, 늦기 전에 달라지고 싶다. 엄마가 정말 죽는다면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낼 수도, 원망할 수도, 그녀의 죄책감을 들쑤실 수도 없다. 아빠와 최근에 아주 힘겨운 대화를 나눴을 때 아빠는 계속 '내가 늙어버렸어' '너무 늦었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말 늦은 걸까. 그래도 둘 다 살아있을 때 뭐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아빠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환갑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빠가 늙어버렸는데 난 삼십 년 가까이 아빠와 맺어온 인연을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하는 상황에 우리 둘을 밀어넣었고, 여기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한때는 너무 살기 싫었고, 그러다가 조금씩 삶이 좋아졌고, 이제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렴풋이 깨닫고 진리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렇게 더없이 멀어진다.

    살면서 한 번도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시간이 무한하다고 착각했던 나의 오만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시간의 끝은 존재하고 난 이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고 이제부터는 내가 하는 일들은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만으로도 지치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 잠들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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