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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륜
    마음 2021. 11. 19. 19:40

    https://youtu.be/AyQ9yHOnYo0

    유튜브 첫 화면에서 추천해주길래 댓글 상태가 궁금해서 들어가보았다. 자식이 부모가 죽었는데 저런 소리가 나오냐는 댓글은 (최소한 상단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또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리고 각자 어렸을 때 느꼈던 공포에 대해 적어둔 댓글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참 고마웠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정서는 ‘가족 얘기는 가족 안에서 해결해야지 밖에 꺼내봤자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거지’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난 아직도 사람들이 우리 가족에 대해 물어볼 때 새엄마를 그냥 엄마라고 부르고, 아버지의 재혼사실 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이 알던 나의 엄마와 지금 나의 새엄마의 소식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그걸 구분한다고 막 호들갑을 떨 정도로 주변에 교양이 부족한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이런 소재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할 정도로 자연스럽지는 않다는 느낌. 잠시나마 미국에서 살았을 때, 그리고 우리나라 밖으로 여행을 다닐 때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의 여자친구나 새엄마나 이복동생이라는 호칭을 쓰는 데에 그다지 거리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히 개인차는 있겠지만.) 새엄마 존재를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해서 기억하는 게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퇴사한 이후에는 회사 사람들처럼 공적인 관계를 신경써야 하는 커넥션이 없어져서 그냥 편하게 얘기를 하고 있다. 반응을 보아하니 나부터 별 일 아닌 것처럼 얘기를 하니 상대방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우리 가족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하기 어려워하는 건, 주변 사람들이 내게 불효녀라며 돌을 던질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안에서 아직 제대로 이해되거나 소화되지 못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내가 겪었던 것들을 엄마의 언니, 그러니까 나의 큰이모에게 얘기했을 때 이모의 첫 반응은 ‘지금까지 몰라줘서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 엄마 찾으러 가자는 얘기 먼저 꺼내지 않겠다’였다. 그래도 자기 친동생 얘기인지라 내게 상처되는 반응이 돌아오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로 얘기한거였는데, 예상 밖이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오히려 더 힘들었던 건 내 쪽이었다. 집에 돌아가려고 아파트 단지를 걸어나와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는데 눈물이 울컥울컥 올라왔다. 내가 두려웠던 건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십 년 가까이 학대를 겪는 동안 내 주변에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누구도 이걸 몰랐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게 아니었을까. 양파 껍질을 까듯이 한 겹씩 들추면서 ‘사실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다.

    엄마에 대해 마지막으로 소식을 전해들은 건 아마 이번 여름이었을 거다. 핸드폰 번호도 아니고, 서울 지번도 아닌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는데 느낌상 엄마 문제일 것 같았다. 알고보니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어느 동네 면사무소 직원이었고, 엄마 이름을 꺼내며 나보고 딸이 맞냐고 물었다. 순간 엄마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으니 수습하러 오라는 소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데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럴 리 없었고, 그냥 엄마가 마지막으로 이사를 나가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새로 이사오는 사람이 민원을 넣었으니 나보고 연락을 좀 해보라는 소식이긴 했다. (내가 나와 외가를 포함해 현재 연락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는데, 직원은 알겠다고 하면서도 ‘정말 아무도 없어요?’하고 되묻기는 하더라.) 전화를 끊었는데, 나도 몰랐던 감정이 갑자기 밀려들어왔다. 실망. 기대하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그 익숙한 묵직함. 내가 지금 실망을 느낀다는 건, 내가 처음 예상했던 그 소식을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는 계속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 밖에 되지 않았다. 나 진짜 엄마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구나.

    거실로 기어나왔더니 R이 내 얼굴을 보고 놀라 왜 그렇게 사색이 되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울컥거리며 올라오는 눈물.

    이런 마음을 느끼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기도 너무 어렵다. 가정폭력이 그렇다. 태어나보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여있던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고 미워하는 마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엄마를 문화센터 수업이나 학부모 모임 같은 곳에서 만났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이런 내막도 전혀 몰랐겠지만, 설령 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에 죄책감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을까? 남이니까 그렇지 않을 거다. 나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문자 그대로 ‘천륜’이네) 그 인연을 나는 십자가처럼 지고 살아간다. 눈 녹듯 말끔히 지워버릴 수도, 남에게 돈을 주고 대신 가져가달라고 쥐어줄 수도 없는 그런 고유한 무게, 나의 존재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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