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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즉고
    마음 2021. 5. 24. 01:24

    오늘 만난 친구가 난데없이 애를 낳고 싶다며 던진 말이다. 삶은 고통, 오직 고통이고 그 자체로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불가항력적인 삶의 의미를 만드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 것 같다고. 하나의 작은 생명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주는 것만큼 생물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만족감을 주는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근데 그런 연결은 혈육 간에만 가능하다고 믿어서 배우자를 통해 낳고 싶지는 않단다. 그래서 결론은... 난자 기증. (친구는 남자다.) 하지만 미혼부에 대한 시선이 아직 곱지 않으니, 그걸 아이가 견뎌내야 하지 않도록 사회가 더 성숙되면 낳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그렇구나. 우리가 처음 만난 십삼년 전에는 마치 세상을 바꿀 열정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우린 매일 숨이 붙어있다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난자까지 기증받는 이야기를 한다.

    요즘따라 삶이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나를 활활 불타는 지옥불로 몰아넣는 우울도 있지만, 마치 나를 흠뻑 적시고 평생 마르지 않을 축축함처럼 감싸는 우울도 있다. 요즘은 후자다. 작업 한 건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멘트를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수 있을지 궁금해 날씨를 확인하다가, 밥을 한 술을 뜨다가 문득 생각한다. 아, 지친다. 적극적인 불행은 없지만 그런 시간이라고 또 마냥 행복한 건 아니구나. 그래도 스스로 일으켜세울 기력은 남아있어 어젠 요가와 명상을 했다. 전날보다 반의 반 걸음 정도 더 나아간 느낌 정도였다. 그래, 이 기운을 몰아낼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겠지. 그냥 이렇게 살고 견디는 게 답이구나.

    답이 정해져 있다고 그 답을 항상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은 삶을 사랑하기가 벅차다. 내 한 몸 견뎌내기에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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