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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을 반려하는 법
    마음 2021. 3. 12. 01:26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자각한 지 10년 째. 그 중 대부분의 시간은 이를 싸워 이겨내고, 내 삶에서 완전히 추방시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에 썼다. 물론 매번 처참히 실패했지만. 기억도 없는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 까지 각인된 긴 세월은, 담뱃불 끄듯 문질러 끌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나의 일부였다. 나를 파괴할 것 같이 미치게 만드는 감정들에 굴복하거나 지배당하지 않고, 앞으로 잘 해보자고 화해하는 것 만으로도 정말이지 힘들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지는 불과 이 년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제 시작인거다. 우울증을 반려하는 지난한 삶의 시작 말이다.

    이렇게 우울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고 어렴풋하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찾아오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통과해 지나갈 때 까지 인내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영원한 감정은 없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이렇게 느끼게 되기 전까지 내게 분명히 더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이 있었듯이, 이 감정이 찾아오며 그 일상이 사라진 것처럼 이 역시 그렇게 없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감정을 느끼며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고, 그냥 우울한 그대로 조용히 보듬어준다. 그동안 계획했던 걸 미루거나 포기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켜도 괜찮다. 견뎌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한다고 전보다 덜 우울하거나 힘든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건 아니다. 짓누르는 우울감을 지고 살아가는 시간은 나의 마음가짐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도 너무 버겁다. 이렇게 해야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찾은 방법일 뿐이다. 어떠한 감정도 영원하지 않다면 그 순간에 휘둘려 잘못된 선택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숨이 붙어있어야 내일이라는, 그 무엇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이 찾아온다. 그 날이 오늘보다 더 나쁠 수도 있겠지만 그 다음날, 또 다음날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속단하고 싶지 않다. 물론 찾아올 상당수의 시간도 이렇게 우울에 절어있는 날이 많겠지만, 반짝 갠 날처럼 따뜻한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깜짝 놀랄 만한 기쁨을 마주하는 날을 만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삶을 그만두고 싶게 만드는, ‘나의 앞날은 이미 정해져 있다’라는 생각은 틀린거다.

    어쩌면 우울을 반려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긍정과 거리가 멀 지도 모른다. 무조건 앞날은 지금과 180도 달라질 거고, 창창하고 건강하기만 할 거란 생각은 앞으로 평생 우울할 거란 생각만큼이나 틀렸다. 혹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올 행복하고 짜릿한 순간들만 애타게 바라보며 견디는 삶은, 복권에 전 재산을 털어 당첨만을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건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 그리고 미래는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는 과학적인 사실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에 반하는 선택을 한다면 아주 바보같은 거니까 안 할 뿐이다. 이를 넘어서는 나의 주관적인 느낌과 판단은 무의미하다. 그런거 깊게 생각할 여력이 있다면, 날 덮쳐온 우울의 파도를 무탈히 넘기기 위한 힘에 보태고 싶다. 그냥 단단히 이 자리에 서서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다. 나의 일부인 이 지긋지긋한 우울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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