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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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마냥 좋아할 수는 없어사람 2021. 12. 19. 01:10
나는 뜨개질을 사랑하지만 힘들 때도 많다. 새로운 기법을 처음 배울 때 느려 터지는 속도 때문에 답답하고, 연달아 실수가 나면 고쳐야 할 생각에 한숨이 나오고, 기껏 다 완성했는데 밑단을 자르고 전부 푸르기도 한다. 좋아하는 걸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함께 딸려오는 고통을 인내할 줄 알아야 계속 좋아할 수 있다. 대학교 때 풍물도 그랬다. 무거운 악기를 메고 오금을 넣고 뜀박질을 하다 보면 무릎 관절이 삼십 년은 일찍 늙을 것 같았다. 한겨울에 손이 터질 것 같은데 같은 가락을 체감상 삼십 분씩 두드리고 있으면 그냥 집에 가고 싶어진다. 아무리 해도 손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자꾸만 박자를 놓치고 욕을 먹는다. 그래도 했다. 좋아하니까. 선배들은 우리가 판을 뛰고 있는 걸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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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이랑 별 상관 없는 전남친 이야기 등사람 2021. 11. 22. 01:35
R의 생일을 기념해 군산으로 일박 이일을 다녀왔다. 맛집과 관광지가 쫙 정리된 내 지도앱을 보더니 언제 다녀온 적 있냐고 해서 그냥 그렇다고만 했다. 전남친 문제로 투닥거릴 시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굳이 말해서 무얼 하나 싶어서. 분명 2년 가까이 만났던 사람인데 그 놈이 나의 연애사에 미친 영향보다 차라리 이 사람을 만난 덕분에 여행지 코스가 미리 준비되었다는 효용이 더 크다. 헤어질 때에도 크게 미련이 없어서 내게 준 것들을 정리하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되게 실용적인 것들이라 그냥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명의 빨랫감도 거뜬히 소화해주는 건조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이패드, 그리고 2017년에 한 번 재미로 코인 투자해보라며 내게 쥐어준 10만원. (지금은 30만원이 되었네!) 억소리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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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벨 거면 칼을 왜 뽑겠어사람 2021. 5. 9. 23:09
앞으로, 아마도 아주 긴 시간 동안 같이 살 사람과는 싸우는 게 그다지 영양가가 없다. 각자 집이 있는 상태에서 연애할 때와는 다르게, 생활반경이 겹치기 때문이다. 밖에서 연애할 때에는 있는 힘껏 싸우고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화를 삭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유독 마음에 안 드는 그 습관만 고치면 참 완벽할 거란 생각도 하고, 이럴 바에는 그냥 확 끝내버릴까 하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같이 살기로 결심을 한 사이는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 여유조차 없다. 고개만 돌려도 그 사람이 거기에 있어서 가라앉을 뻔한 감정이 다시 치고 올라온다. 그렇다고 집 밖으로 내쫓으면, 그건 밖에서 싸우다 혼자 집에 가 버릴 때보다 몇 배는 무서운 결과로 돌아온다. (실제로 그래본 적은 없어 그냥 상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