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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가능해도, 괜찮지 않아도 ‘나’
    마음 2021. 5. 3. 23:55


    “아빌리파이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리셉터와 상호작용하며, ‘병식’이 있는, ‘비정신장애인의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약이었다. 그러나 그 신약이 전제하고 있는 ‘다른 나’의 ‘원래의 나’에 대한 우월성을 거부하는 운동이 바로 매드프라이드 운동이었다. 매드프라이드 운동가들에게 광기란 “나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질환’도 아니며, 내가 치료하길 원하는 ‘증상’의 집합체도 아닌, 내 정체성의 한 측면”이었던 것이다.”

    “매드프라이드 혹은 장애인운동의 핵심에는 정상성에 대한 거부가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긍정, 즉 손상된 몸과 다른 정신상태를 가진 나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움직임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정신상태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매드프라이드의 이념은, 해당 정신상태를 ‘고치고 치료하여’ ‘정상적 능력’을 되찾게 해주겠다는 아빌리파이(로 대표되는 현대 정신약물학)의 이념과 병존할 수 없었다. 즉, 사회적으로 주어진 ‘정상성’을 거부하고 나 자신의 환청, 망상, 우울, 집중력 저하와 같은 정신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보다 ‘정상적’ 상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정신과 약제는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 “내가 너를 가능하게 하리라 - 아빌리파이의 탄생” 중에서



    아빌리파이(Abilify). 내가 2017년부터 이듬해까지 먹던 약의 이름이다. 이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가능하게 한다’ 정도가 되겠다. 참으로 신묘한 이름이었다. 당시 이를 처방한 선생님은 내가 지긋지긋하게 겪고 있던 부작용 - 잠이 너무 오거나, 혹은 잠이 하나도 오지 않거나, 죽지 않으려 먹는 건데 오히려 자살 충동이 심해지거나, 눈 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먹먹해지거나 하는 - 그런 증상이 덜 할 거라고 약속했다. 먹던 약이 하도 많고 자주 바뀌어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약의 이름과 그렇게도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설명은 없었다. 이 약은 나를 ‘가능하게’ 해줄 수 있었다. 근데 뭘 가능하게 해준다는 거였지? 목적어 없이 그냥 ‘가능하게’ 해준다는 말은 마치 악마가 내민 백지수표와도 같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기 위해 나도 모르게 치르는 대가는 무엇인가.

    당시에는 너무 당연하게 해야 할 것들이 정해져 있어 그걸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졸지 않고 하루 10시간 공부를 소화한다던가, 새벽에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는 일 없이 푹 잔 다음날 하루 10시간 공부를 소화한다던가, 무기력으로 인해 청소나 설거지나 빨래를 미뤄두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 방해받지 않고 하루 10시간 공부를 소화한다던가. 이를 얻기 위해 내가 겪어야 하는 건 비교적 단순했다. 마치 웃음가스를 가득 들이마신 것 처럼, 억지스러운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약은 슬픔과 우울은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터지는 놀라움과 기쁨마저 느끼지 못하도록 뇌를 마비시켰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움직이는, 뭔가 언제나 살짝 들떠있는 듯한 인격체를 심어두었다. 난 나의 머릿속에 갇힌, 아주 작아져 버린 인간처럼 나의 눈을 통해 바깥 세상을 보고 내게 쏟아지는 것들을 억지로 느꼈다. 나를 대신해 움직여주는 이 존재는 평소보다 더 자주 웃었으며, 피곤을 덜 느끼고, 집중을 더 잘 했다. 내가 이렇게 생산적일 수도 있구나! 도저히 내가 알던 내가 아니라는 이질감만 어떻게든 무시하면 이대로 사는 편이 이득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머릿속에 갇혀 갑자기 시간이 넘치게 된 이후로, 나의 쪼그라든 자아는 하루종일 고민했다. 내가 평소에 우울에 절어있던 건 사실이지만, 고양이가 재채기 하는 걸 보고 픽하고 웃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가슴을 탁 치는 감동을 느끼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감정이 너무도 날카롭고 생생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그런 날카로움이 내 자신을 향해 나를 다치게 하는 일이 늘어났고, 그래서 병원을 가게 된 것이고, 약을 먹어 나를 둔감하게 만든 것이었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경험이 나를 아프게 하니, 마치 썩은 이빨의 신경을 죽이고 ‘치료’라고 부르는 것처럼 감정의 전원을 차단시키는 원리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뒤 난 스스로에게 한번 더 물었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걸 포기할 정도로 내가 갖고 싶은게 무엇일까? 그게 내겐 얼마나 소중할까? 뭔가 어렴풋이 답을 찾은 것 같았지만 온 몸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에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약을 끊게 된 경위는 생각보다 더 단순하다. 약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이유로 자퇴를 했고, 그러면서 약을 먹던 목적을 잃어버렸다. 정해져 있는 시험 날짜도, 채워야 하는 공부 시간이 사라진 상황에서 전처럼 약의 힘을 빌려 지켜내야 할 것이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생존에 초점이 옮겨갔다. 너무 많이 또는 적게 자지 않도록 하고,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며, 어떻게든 침대에서 기어나오도록 만들어 등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약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시간을 지켜 먹기만 하면 아빌리파이는 그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초인적인 힘을 필요로 했던 로스쿨 생활에 비해, 이제부터 지켜내야 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누워있어도 날 찾는 사람이 없었고, 집 밖으로 며칠 나가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할 게 없는데 꾸역꾸역 열심히 살아야 하나? 머릿속에 갇혀있던, 나의 날것의 자아가 아주 작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하자. 이젠 날 놓아줘.

    그래서 하루는 남은 약을 전부 빻아서 한 번에 삼키고, 아무 기억이 없는 48시간을 보낸 뒤, 일어나 속을 게워내고 매주 화요일 아침 9시 50분에 맞춰놨던 알람을 지웠다. 그 시간에 더 이상 병원을 가지 않기로 혼자 약속했다. 물론 의사와의 상의 없이 마음대로 약을 끊는 일은 무척 위험하기 때문에, 절대로 추천하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경고를 온 몸으로 겪는 일은 약을 먹을 때보다 더욱 고통스러웠다. 최소한의 각성을 유지시켜주던 약이 갑자기 끊기니(그러기만 했는가, 몇 주 치 약이 한꺼번에 몸에 들어갔다가 나온 직후였다) 온 몸은 물을 머금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졌다. 기억이 뚝뚝 끊기고, 시간이 며칠 단위로 토막나 눈 앞에 펼쳐졌다가 자취를 감췄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아주 천천히, 몸은 약을 먹지 않던 시절로 돌아갔고, 난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자신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는 나의 모습을 삶에서 추방시켜야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당장 이뤄야 할 목표들이 사라지고 살아있기만 해도 되는 상황에 놓이니 생각이 달라졌다. 감정이 닥치면 닥치는대로 내 자신을 맡겨 목놓아 울어보았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짐승처럼 오열했다. 그러다가 알아서 울음이 그치면 찾아오는 시원함을 한껏 만끽했다. 당장 중요하게 해야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울다가 하루를 다 보내도 아쉬울 게 없었다. 시시껄렁한 예능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는데, 그 웃음소리가 너무도 낯설지만 반가웠다. 고양이가 게워낸 헤어볼을 밟자 발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 벽을 보고 있는데 치밀어 오르는 화도 그저 감사했다.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면 난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졌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해야만 하는 게 없는데 말이다.

    아빌리파이에게 이별을 고하며, 난 무엇도 ‘가능하게’ 될 필요가 없는 삶이 차라리 낫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해 꼭 해야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지만, 그 때보다 나를 덮치는 감정의 파고가 조금은 낮아져서 괜찮다. 그리고 때로는 파도에 흠뻑 적셔질 수 있도록, 난 그 날의 마음에 따라 몇 시간 늦게 출근하거나 핸드폰을 꺼둘 수 있는 업을 선택했다. 그렇게 짐승처럼 날뛰는 나의 우울을 억지로 묻어두지 않고, 그에게 마땅한 자리를 마련해 두고 살아가려 한다. 우울로 인해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도 괜찮다. 그냥 그런 내 자신도 안고 살아가면서, 그런 내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작은 성취감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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