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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6gita 2021. 11. 6. 02:15
해방촌 나들이를 다녀왔다. 내 손으로 만든 조끼를 걸치고, 좋아하는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남산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 후암동까지 천천히 걸었다. 도중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멈춰서 가만히 살펴보고 또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 고즈넉한 카페를 찾아 잠시 뜨개질을 하며 쉬고, 약속된 서점에 가서 한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돌아왔다. 돌아보면 여유롭고 느긋한 하루였는데 집에 도착해서는 날카로운 마음이 주체되지 않아 늦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안다. 글을 쓰는 일은 내 자신에게 잔뜩 몰두해야 하는 일이라 진이 빠진다. 오늘처럼 독자들이 예정되어 있고, 또 타이트한 시간 제한이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오늘 내가 참여한 행사는 외로움과 관련된 랜덤한 주제에 대해 즉석에서 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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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즉고마음 2021. 5. 24. 01:24
오늘 만난 친구가 난데없이 애를 낳고 싶다며 던진 말이다. 삶은 고통, 오직 고통이고 그 자체로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알아서 이유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불가항력적인 삶의 의미를 만드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 것 같다고. 하나의 작은 생명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주는 것만큼 생물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만족감을 주는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근데 그런 연결은 혈육 간에만 가능하다고 믿어서 배우자를 통해 낳고 싶지는 않단다. 그래서 결론은... 난자 기증. (친구는 남자다.) 하지만 미혼부에 대한 시선이 아직 곱지 않으니, 그걸 아이가 견뎌내야 하지 않도록 사회가 더 성숙되면 낳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그렇구나. 우리가 처음 만난 십삼년 전에는 마치 세상을 바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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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벨 거면 칼을 왜 뽑겠어사람 2021. 5. 9. 23:09
앞으로, 아마도 아주 긴 시간 동안 같이 살 사람과는 싸우는 게 그다지 영양가가 없다. 각자 집이 있는 상태에서 연애할 때와는 다르게, 생활반경이 겹치기 때문이다. 밖에서 연애할 때에는 있는 힘껏 싸우고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화를 삭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유독 마음에 안 드는 그 습관만 고치면 참 완벽할 거란 생각도 하고, 이럴 바에는 그냥 확 끝내버릴까 하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같이 살기로 결심을 한 사이는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 여유조차 없다. 고개만 돌려도 그 사람이 거기에 있어서 가라앉을 뻔한 감정이 다시 치고 올라온다. 그렇다고 집 밖으로 내쫓으면, 그건 밖에서 싸우다 혼자 집에 가 버릴 때보다 몇 배는 무서운 결과로 돌아온다. (실제로 그래본 적은 없어 그냥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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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 행복의 기록gita 2021. 5. 9. 00:31
오늘 하루는 단 한 번도 힘들다, 싫다,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아침 열 시에, 평소보다는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그다지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그리고 개운했으니까. 일어나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니, 전날 새벽에 의뢰를 고민했던 고객이 마음을 정했는지 입금을 해두었다. 11만원. 주말에 일하기 너무 싫어서 평소보다 꽤 높은 견적을 불렀는데 의외로 응해주었다. 아.. 이래서 우리집 앞 케이크집 사장님이 주7일 일을 하는 건가. 아무튼 일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약속한 피드백을 보내주었다. 일어나 화장실을 갔을 때는 '요리해야 하는데, 하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R이 왠일로 파스타를 밖에서 먹자고 한다. 왠만해 먼저 외식을 제안하지도 않고, 그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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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라는 카드에 대해일 2021. 5. 7. 16:53
어떤 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고양이들이 드나드는 화장실 문이 그렇다. 하지만 좀 애매한 방식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문도 있다. 예를 들어 비상문은 평시에는 꼭 닫혀있어야 하지만,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꼭 열려야 할 것이다. 그 문은 그렇게 언제든 내가 원하면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리고 가능성의 존재는, 평소에는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과는 별개로 소중하다. 프리랜서로서 진상 고객을 대하는 일도 그러하다. 왠만하면 꺼내지 않는 카드지만, 상대방이 정말이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인간일 때에는 끊어낼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 물론 비상문처럼 이를 실제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은 드물다. 일단 돈을 받고 작업을 하던 도중 상대방이 말썽을 피우면 빠져나갈 구멍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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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gita 2021. 5. 7. 00:50
1. 내가 겪지 않은 것들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2. 문득 내가 쓰는 글이 나의 과거와 상처에만 묻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니까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고, 이게 제일 아프고 제일 힘든 거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남들의 상처도 그 사람의 고유한 아픔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어렴풋이 얻게 됐다. 이를테면 내가 정말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잃는 아픔. 그걸 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는 무력함을 막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치환할 수 밖에 없는 마음. 난 가족이 내게 항상 아프고 떼어내고 싶은 존재였어서, 또 다른 세계에서 내게 가족이 너무나도 소중한데 그게 사라져버렸다면 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픈 사람이 되었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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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도, 괜찮지 않아도 ‘나’마음 2021. 5. 3. 23:55
“아빌리파이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리셉터와 상호작용하며, ‘병식’이 있는, ‘비정신장애인의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약이었다. 그러나 그 신약이 전제하고 있는 ‘다른 나’의 ‘원래의 나’에 대한 우월성을 거부하는 운동이 바로 매드프라이드 운동이었다. 매드프라이드 운동가들에게 광기란 “나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질환’도 아니며, 내가 치료하길 원하는 ‘증상’의 집합체도 아닌, 내 정체성의 한 측면”이었던 것이다.” “매드프라이드 혹은 장애인운동의 핵심에는 정상성에 대한 거부가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긍정, 즉 손상된 몸과 다른 정신상태를 가진 나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움직임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정신상태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매드프라이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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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의 대가마음 2021. 5. 2. 23:43
여전히 많이 아프다. 우울을 나의 일부로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 능통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심장의 바닥부터 생살을 갉아먹히는 밤이면, 난 내 자신을 초연히 사랑하겠다던 결백한 의지를 코를 푼 휴지처럼 구겨 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내가 무슨 대단한 성자라고 이런 걸 허허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난 나락으로 떨어진 저급한 인간의 얼굴로 침을 튀겨가며 외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 아니 하지 않았나. 왜 그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나. 왜 아무도 없었나. 속으로만 지르는 소리는 나의 내면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세포와 내장을 파고든다. 그런 밤에는 방충망을 박살내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천 번도 더 한다. 이것이 바로 내 자신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