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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ta 2021. 5. 7. 00:50

    1. 내가 겪지 않은 것들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2. 문득 내가 쓰는 글이 나의 과거와 상처에만 묻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니까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고, 이게 제일 아프고 제일 힘든 거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남들의 상처도 그 사람의 고유한 아픔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어렴풋이 얻게 됐다. 이를테면 내가 정말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잃는 아픔. 그걸 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는 무력함을 막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치환할 수 밖에 없는 마음. 난 가족이 내게 항상 아프고 떼어내고 싶은 존재였어서, 또 다른 세계에서 내게 가족이 너무나도 소중한데 그게 사라져버렸다면 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픈 사람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의 세계에 갇힌 서로를 우리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알려는 마음만으로도 충분하지만.)

    3. 내가 다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너무 오래 듣고 살아서, 다 크고 난 뒤에 내가 진짜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으려 바득바득 애를 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질 수 없고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멜로가 체질>을 보는데 이런 대사가 나왔다. “아무리 성격이 나쁘다지만, 그 정도로 사람들 앞에서 욕을 먹을 정도로 잘못한 줄은 잘 모르겠어서요. 주제 넘은 말이라면 죄송합니다.” 그걸 들은 상대방은 나중에 말을 한다. “맞는 말이야. 쪽팔리네.” 나도 저렇게, 당장의 감정을 뛰어넘어 나의 행동과 상황만 보고 말끔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4. 사실 난 피해의식과 무관한 상황 속에서는 상대방의 의도를 꼬아듣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적당히 눈치껏 내포된 속마음을 캐치해야 할 때에도 미련하게 그러지 못한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별 생각 없이 상대방의 질문에 대답을 했는데 다들 웃음을 참으면서 이상하게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상황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난 의외로 둔하다. 그런게 너무 거북해서 난 말하는 대로 듣고 말하는 대로 들리는 사람들이 좋다. 평범한 상황에서는 으레 따라붙을 법한 해석, 숨겨진 의도 등등이 아무것도 없는 대화. 이를테면 ‘내가 매일 너랑 새벽 네시까지 통화를 한다고 해서 너랑 사귀고 싶은 건 아냐, 그냥 외로울 뿐이야’라던가. ‘그 시간까지 통화하기 싫다고 해서 너라는 사람이 싫은 게 아냐. 너와 같은 마음이 없을 뿐, 난 여전히 너를 생각하고 걱정해’라던가. 누가 먼저 여지를 줬네, 누가 봐도 그건 아니네 따위와 같은 뒤늦은 해석이 따라붙을 필요 없는 사이는 그저 명쾌하다. 난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뿐이다. 아니, 한 명이라도 있어서 감사해야지.

    5. 그 사람은 언젠가 내게 말했었다. “넌 너의 상처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하고, 그래서 그 누구도 너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믿지. 그렇게 너 주변에 담을 쌓는 네가 참 답답해.” 내 상처를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마치 나를 피해의식 가득한 사람 마냥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게 울컥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몇 년이 지나서야 가시를 조금 거두고, 조금은 민망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맞네, 나 피해의식 많긴 하지. 그런 내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 그런 말도 아프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6. 하루는 그 사람이 “너 그때 왜 나한테 열심히 연락하고, 매주 보러 왔었어?”하고 물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그땐 외로웠고, 근데 너랑 시간 보내니까 마음이 편했고, 그래서 더 오래 있고 싶었지.” 그 말을 주고 받고도 우리 사이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냥 ‘아, 그랬구나’ 내지는 ‘아, 그랬지’만 잠깐 떠올리고 말았을 뿐이다. 우리는 며칠 뒤 만나서 밥을 먹고 한참 수다를 떨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7. 이번에 그가 새롭게 던진 주제는 ‘참을성’이었다. 그는 상대방의 학력을 봐야 한다면, 하기 싫은 걸 참는 능력의 지표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지능이랑 적절히 배합이 되야하는데, 나같은 경우에는 참을성이 무척 없으니 그걸 지능으로 메운거라고 해줬다. (고맙다..) 진짜로 기분이 상하진 않아서 나도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에 내가 다시 한 번 미달한 것 같아 내심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도 변론을 하고 싶은 마음에 “난 생애 첫 이십년 동안 살면서 참을거 다 참아서 그런거야”라고 말을 해버렸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싶어 혼자 만들어냈던 논리인데 그렇게 입 밖으로 굴러나올지는 몰랐다. 놀랍게도 친구는 “그러네”라고 답을 해주었다. 오, 이거 생각보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괜히 고마웠다.

    8. 이 논리가 정말로 말이 되는지는 심리학, 생물학적으로 검증해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모를거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런 의미의 진실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의 인생에서는 참을성 총량의 법칙이 존재하고, 나에게 할당된 양은 너무 일찌감치 써버려서 지금은 몽당연필마냥 작아져버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나의 사고방식, 인생을 대하는 자세 역시 거기에서 크게 멀어지지 않는(못한)다. 언젠가는, 가까운 미래는 아니고 아주 멀리 떨어진 미래에는, 이 생각이 조금은 바뀌어 내가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지금은 이렇게 나의 한계를 결정지어버리는 좁은 시야도 마음에 든다.

    9.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잘 참고 여기까지 대견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남들 같으면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버렸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많은 걸 해 오고, 남들에게 (대체로) 피해를 끼치지 않는 적당한 어른이 되었다는 건 정말이지 그 자체로서 참을성의 화신이라고 해도 되겠다.

    10.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참아보았으니 남들보다 힘든 걸 더 잘 참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단련되어 더욱 강해지는 성격의 능력은 아닌 것 같다. 이젠 너무 지긋지긋해서 그런 비슷한 낌새만 보여도 미쳐 돌아버릴 것 같다. 아, 어쩌면 내겐 조금 그 시점이 늦게 찾아왔을 뿐, 나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게 되는 건가?

    11.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도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거나, 물건을 던져서 사회생활에 문제를 겪나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난 웃음을 터뜨리면서 한 번도 그래본 적 없다고 답했었는데, 그때의 나는 주변 사람들마저 잃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에 그런 마음을 억눌렀던 것 같다. 요즘은 이성을 손톱만큼만 눌러버리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 같아서, 쓸데없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경계하게 된다.

    12. 이건 단순히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아무데나 튀어버린다기보다는, 나의 감정이 향하는 상대가 내가 애착을 가지는 대상을 넘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되어서 그런 것 같다. 요즘 들어 나를 갉아먹는 생각은 “왜 그때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는가”다. 학대에 노출되었던 첫 이십년을 학년, 학기 단위로 찬찬히 뜯어보며 얼굴들을 떠올린다. ‘넌 정말 몰랐던 걸까’... ‘왜 그때 그런 얼굴을 보고서도 모른척을 했을까’...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각자에게는 자신의 삶이 가장 소중하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일지언정 기회를 손에 쥔 사람이 귀찮거나 두렵다면 그걸 줄 의무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얼굴에 약간의 걱정이 스쳐지나간 적은 있어도, 우리집 현관문을 박살내고 날 구하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13. 이상하게도 당시에 내가 겪는 걸 똑똑히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은(문자 그대로 딱 한 명) 하나도 밉지 않다. ‘알면서도 왜 더 열심히 돕지 않았나’라는 생각은 정말 하등 들지 않는다. 그냥 그 시기에 내 곁에 있어주어서, 모든 걸 생생히 목격해주어서, 그렇게 증인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가끔 그 이십년을 돌아보며 피눈물이 뚝뚝 흐를 때에도 그 사람에게 만큼은 칼날이 향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핏물이 꿀렁거리며 흐르는 강을 비추는 조용한 달이다. 지켜보기만 했기 때문에, 하지만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지켜봐주었기 때문에 무결하다. 참 다행이다.

    14. 하지만... 나의 감정과 무관하게, 때로는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조금의 죄책감을 남겨두길 내심 바란다. 그래야만 나를 계속 기억해주고 나를 안쓰럽게 생각해줄 것 같아서.

    15. 이것 역시 자연스러운, 지나갈 단계라고 생각한다. 파도가 밀려오고 또 다시 밀려가듯. 처음엔 이게 제일 힘들고 미웠다가, 그게 활활 타다못해 재가 된 뒤에는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태울거리를 찾게 되는 거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특별히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 발로 걸어들어오는 마음을 어떻게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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