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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찾지 않는 신에게, 기도합니다
    gita 2021. 1. 19. 03:08

     

     

      할머니의 가슴이 헐떡거리듯 오르내리고 있었다. 산소호흡기가 공기를 불어넣는 것인지, 마지막 숨은 원래 저렇게 세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내 등을 떠밀며 인사드리라고 했지만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쁜 호흡과 흐느낌으로 소란한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었다. ‘주님, 할머니를 부디 천국으로 인도해주세요.’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외가 식구들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어쩌다 들어간 중학교도 미션스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은 자라나지 않았다. 분노와 우울에 절어 사는 어머니를 혼자서 견뎌내야 했던 세월 속에 신이 자리할 곳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내게 견딜 수 있는 시련만을 주거나, 무한한 사랑을 베풀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계획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불행한 환경에 던져놓고 무심히 지켜볼 뿐. 그런 내게 교회 좀 다니라던 친척들의 잔소리는 귓등에도 닿지 않았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은 나를 찾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때때로 비굴하게 신을 불러냈다. 초월적인 힘의 도움 없이는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모으고 하나님 아버지께 빌었다. 엄마가 목숨 걸고 지키라던 교정기를 잃어버린 날, 대입 합격자 발표 버튼을 누르기 직전, 혹은 학사경고 여부를 결정지을 마지막 시험장에 들어갈 때 그랬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하지만, 마치 얼어죽기 직전 모든 성냥을 불태우는 성냥팔이 소녀의 마음으로 한번 질러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당연히 그런 파렴치한 부탁에 대한 응답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왜 기도를 했을까? 

      소리내어 도움을 구하는 시도만으로도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눈을 감고 몇 마디 하는 것에 그치더라도, 그걸 생각해낸다는 것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절망 너머를 볼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내 인생의 가장 무거운 십자가였던 어머니를 지고 갈 때에는 한 치의 희망도 없었기에 감히 기도할 생각조차 못했다. 어머니를 내려놓은 뒤 겪었던 자잘한 시련들은 달랐다. 바라는 바를 말로 내뱉으면 머릿속에만 맴돌던 간절함이 모습을 갖춰 빛났다. 덕분에 모든 기도 끝에 후련함이 찾아오고, 기적이 찾아오지 않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얻었다. 

      신의 은총 없이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도하며 절망에 매여있던 스스로를 자유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임종을 앞둔 나는 무력했다. 온 몸을 던지더라도 닥쳐오는 죽음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위해 기도했다. 평생 하나님을 섬기신 할머니였으니 당신께서 믿으시던 천국에 가셨을 거라고 위로했다. 마음에 남을 구멍은 세월과 함께 무뎌질 거라 되뇌었다.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인간답게 가당찮은 이유의 기도였다. 그래도 끝내 바라던 평안을 주신 걸 보니 마음이 서글프면서도 부끄럽다. 어쩌면, 신은 나를 항상 사랑했던 걸까.

     


     

    *블루블랙이 주최하는 1월 3주차 망월장 출품작입니다. 감사하게도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메인에 걸렸어요!

    (링크: blue-black.life/post/6005cf17480ed51c878dbd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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