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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도 하십니까 걱정할수있는데마음 2026. 10. 12. 02:34

(잔인한 폭력, 살.자 시도 묘사 주의)
반평생을 모태 신앙 가족 사이에서 컸고 무려 외삼촌이 목사여서 명절마다 차례 대신 예배를 보고, 온갖 친척들의 손에 끌려 교회라는 교회도 다 가봤지만, 끝내 신앙심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배운 건 있어서 급할 때엔 밤에 애타게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를 하며 울다가 잠들기도 했는데, 그것도 중학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신도 누구도 아무도 듣지 않는 데 뭐하러 하나 싶어서.
나 홀로 20년 가까이 겪고 있는 이 미친 폭력과 광기를 아무도 모르고, 멈추지 않는데도 여전히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생각보다 방만하고 무관심한 게 분명했다. 신은 누군가를 특별히 총애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다. 내가 잘못이 있어서 그런 벌을 받았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없으니까. 그냥 운빨이었던 거다. 가챠를 돌려 내가 뽑고 싶은 캐릭터가 한 방에 나오기도 하고, 동전을 넣고 또 넣어도 가장 갖기 싫은 것만 줄줄이 소세지마냥 연달아 나오기도 하듯. 난 그저 우연히, 기절할 정도로 맞고 감금 당하고 이빨로 물리고 밟히고 주방 가위로 머리가 잘리는 그런 운명이 점지된 것이다.
그만둘 선택지는 없었다. 그때는 명확한 탈출 방법도 있었고. 공부를 그만두지 않고 대입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합법적으로 집을 탈출해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 미끄러져서 재수라도 하면 고등학교에 딸려있던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서 재수학원을 다녀아하는데, 그랬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고3때 기적적으로 성적을 올려서 대학 딱 하나 붙어서 갔다. 덕분에 살았다. 그때 살았다고 이어질 삶이 마냥 녹록할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물리적인 학대에서 벗어나고,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엄마와 의절하면서 모든 접촉이 끊어지고, 여전히 고난이 던져지지만 전에 비해 목표는 모호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학생 시절에는 어떻게든 죽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 무사히 성인이 되는 것이었는데. 막상 성인이 되어도, 손찌검에서는 벗어났어도 망가진 부분이 여전히 너무도 많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난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고 1인분의 삶을 해내며 생애주의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은 한지 문제를 차치하고, 난 그걸 원하나? 그걸 성취하면 행복할까? 모든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질까? 사실 내거 바라는 건 그것 하나였는데. 정신을 빼놓기 위해 이 과제에서 저 과제로 달리기 바쁠 때, 잠시 숨을 고르는 그 사이에 파고드는 자기파괴적 생각에 더이상 시달리지 않은 것. 어느 날 자러 누웠는데 내가 더 이상 악몽에도 시달리지 않고, 적당히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고, 내일도 모레도 기대할 일이 잔잔하게 있는 것.
버티는 게 장기였지만 버틸 일이 없는 편을 선택할 수 있다면 선택했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나홀로 하는 장기자랑이 무슨 소용인가. 그만 힘들고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행복은 과분했고, 불행하지 않기만 해도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다. 삶을 끝내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내리 실패하고 명줄에 멱살 잡혀 끌려가는 심정으로 바닥을 구르며 대충(이라고 썼지만... 생각해보니 허투루 보낸 시간은 하나도 없었다. 우울증으로 침대에서 일주일 동안 나오지 못해 몸과 마음이 모두 썩어가던 와중에도...) 견디다보면 또 조금씩 잊혀지고, 좀 낫다, 괜찮다 하는 시간의 비중이 조금씩 늘고, 그러다가 문득 돌아보니 서른이었다.
서른. 난 이 나이까지 내가 살아있을 줄 몰랐는데.
이때부터 주어지는 시간은 공짜고 덤인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삶을 조금은 가벼이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단히 중요한 것도 없으니 대단히 무겁게 살 필요도 없었고. 미치고 팔짝 뛸 일이 넘쳐도 어쨌든 돌고 돌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 편, 배우자와 함께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미래도 소중했고.
서른. 식을 올렸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울타리와 안정을 영구적으로 얻은 줄 알았다.
서른 하나. 전남편의 아이패드에서 그가 애인과 나눈 메시지를 천천히 읽으며 다 끝났다는 걸 직감했다.
서른 둘. 반 년 간의 숙려 끝에 이혼을 결정하고 경찰을 몇 번이나 부르고, 구급차 뒤에 타서 내일 모레면 남남이 될 사람에게 강제입원을 권유하는 정신과 의사를 대면하고(사유: 내가 아직 법적 배우자고 나 말고는 아무도 영어를 못했거나 하고 싶어하지 않았음), 협의이혼확정기일 당일에 전남편이 개큰지각을 했으나 기적적으로 서류 처리까지 완료, 마지막 피날레로 또 경찰을 불렀으나 한 시간 전 기점으로 내게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손을 떼고 일주일 뒤에 용역 트럭과 경찰을 대동해 쫓아냈다.
그쯤 되니 서른 이후부터 닥칠 이런 시련을 직감적으로 알고 그 전에 삶을 정리하고 싶었던 걸까, 싶기도 했다.
지친다. 행복이 와도 밑 빠진 독처럼 줄줄 훌러 흩어진다. 버티기 두렵고 도망치고 싶다. 끝내는 게 두렵지 않고 오히려 생각할 수록 홀가분하고, 반대로 마음 접고 다시 살아갈 생각을 하니 그렇지 않은 걸 보며 이제 진짜로 마음 다잡았구나 싶었다. 준비물도 시키기 직전이었고 마음으로 날짜도 정해놨다. 평소에는 신변 정리도 계획을 하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언질 없이 가장 평범하고 멀쩡해보일때 떠나고 싶었다. 힘들다고 징징대며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러다가 결국 끝나면 아무 의미 없는 건데.
애인에게 들켰다. 애인 덕분(때문)에. 같이 나란히 앉아서 같이 요리한 밥을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데 갑자기 애인이 내 어깨를 감싸안고 꼬옥 당겨 내 머리를 본인 어깨에 기대게 했다. 윤은 몸이 항상 따뜻하다. 침 튀기면서 재잘재잘 밥을 먹다가 예기치 못한 다정함 공격을 당하니... 당연히 좋았다. 머리를 대고 힘을 푸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느껴지는 팔과 손의 촉감, 부드럽지만 단단한 살결, 햇볕 내음을 닮은 살내음, 내 볼에 닿은 윤의 긴 머리가 선풍기 바람에 흔들려 간질이는 순간이 멈춰서 영원한 사진처럼 남았다. 평소에도 워낙 다정하고 표현을 잘하는 애인이지만, 내 어깨에 두른 손과 이마에 맞추는 입술이 그날따라 너무도 좋아서 슬프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윤에게조차도 언질조차 주지 않고 재빨리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하게 걸어잠근 그 결심이 일시에 무장해제 되었다.
사실은 그 전에 새벽에 같이 그네를 타며 날아간 신발 한 짝을 두고 깔깔대다가, 각자 본인이 설거지를 하겠다며 고무장갑을 두고 작고 귀여운 육탄전을 벌이고, 꽉 안긴 채로 누워 품 속에서 녹아들며 오랜만에 깊고 안전한 잠에 잠기는 편안함...
하루 더 살자, 라는 마음이 다시 한 번 치고 올라와서 눈물이 쭉 났던 것 같다. 하필 그를 지하철에서 보내며 개찰구에 막 교통카드를 찍은 직후였다. 이제 막 헤어지려고 할 때 갑자기 울망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막차 놓칠 것 같아 카톡으로 설명하겠다며 일단 등을 떠밀고 구구절절 다 얘기했다. 얼마나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준비했는지. 이런 얘기를 듣는 입장에서 얼마나 놀라고 힘들고 슬플지 알면서도... 여러 차례 미안하다고 말했다. 슬픔을 나눠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삶의 굴곡이 차라리 적당히 재미 없고 무난한 편이었다면 애인이 덜 고생스럽지 않을까. 노래 제목처럼, 나아지지 않는 나를 데리고 산다는 건...
아무튼 지금은 안정이 많이 되었고 내일 출근을 준비(걱정)해야 한다.
해낼 것이다, 라는 다짐을 할 힘은 없지만, 거실 테이블에는 윤이 사준 나의 최애 젤리가 한 통 가득히 있고, 다음에 만나면 만들 왁뿌볼 세트도 앉아있고, 토요일에 공연 다녀올 때 윤이 나를 차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고, 이번주에 입사 이래 처음으로 받은 큰 프로젝트가 마무리가 되므로 또 잊고 나아질 일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게 최선이다.
이렇게 타인에게 기대고 빚지어 숨을 빌어먹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