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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간헐적 비건 실천에 대하여 (feat. 비건 뜨개질)
    gita 2021. 12. 13. 15:16

     

    1. 내가 바꿀 수 없고 행동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화를 내는 게 무슨 소용인가? 코로나 3차 접종에 대한 공지를 보다가 맨 마지막에 '우리 모두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를 읽는데 갑자기 무력감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밀려들었다. 우리가 정말 일상을 잃어버린게 맞구나. 코로나 시국이 완전히 종결되어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냥 익숙해지는게 낫겠지, 난 원래도 집에 처박혀있는 걸 좋아했으니까 뭘, 그리고 회사 다닐 때에는 집에서 일할 수 있으니까 좋은 거겠지? 등의 생각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게 되었다. 일상의 회복, 코로나 블루 같은 표현이 식상하게 느껴질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2. 그렇다면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문제들은 뭐가 있을까. 일단 몇 달 전부터 간헐적으로 비건식을 실천하고 있다. 식당 가서 비건 옵션이 있으면 최대한 선택하려 하고(유혹 앞에 무너질 때도 많지만 - 예컨대 어제는 비건 팟타이를 먹겠다고 작심했는데, 나가보니 너무 추워서 할 수 없이 닭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를 선택했다),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할 때에는 식물성 재료만 사용한다. 확실히 고기를 안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지 않아 좋지만, 치즈나 달걀처럼 가벼운 요리에 자주 쓰이는 재료마저 포기해야 할 때에는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실천중. 제로웨이스트에도 관심이 생겨 대나무 칫솔을 사고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예전에는 비건도, 제로웨이스트도 그 분야에 특출난 관심을 가지는 운동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슈에 꾸준히 노출되다보니 동물권이나 쓰레기 문제가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살코기를 씹을 때 이게 한때 우리집 고양이처럼 숨이 붙어있던 동물이었다는 게 자꾸만 상기되고, 공짜로 주는 비닐 봉지를 받으려던 찰나에 문득 이 봉지가 땅에 묻혀 몇백 년이고 썩지 않는 현장이 눈 앞에 그려진다. 대단한 이상이나 철학을 실천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순간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때로는 꽤나 물리적으로) 거북하게 느껴져서 대안을 찾게 된 정도다. 성실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라는 마음으로 실천 중.

     

    3. 비건 지향으로서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뜨개실이다. 앙고라, 라쿤, 폭스가 모피 문제였을 때에는 모두가 기겁하며 잔인하다고 멀리하던데 이상하게 같은 동물의 털이 함유된 실은 날개 돋힌 듯 잘 팔린다. 물론 가죽을 완전히 벗겨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빽빽한 농장에 가두어 기르고 산 채로 털을 뜯듯이 뽑거나, 엉덩이 털이 금방 더러워져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살을 그대로 도려내버리는 공정이 흔하다고 한다. 내가 취미생활 즐겁게 하겠다고 이런 제품을 마구 사고 싶지 않지만, 정작 동물복지를 앞세우는 브랜드 실은 너무너무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윤리적으로 생산된 제품이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나는 어떤 취급을 받은 양으로부터 온 지 알 수 없는 저가의 가성비 실을 고른다. 거기에 동조하는 소비자 1인으로서 요즘 많은 갈등을 한다. 식물성 섬유는 보온성이나 촉감이 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고, 합성섬유는 플라스틱 덩어리고 무엇보다 뽀득거리는 촉감이 천연섬유를 따라갈 수 없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걸 핑계로 울실을 몇 콘 씩 쟁이고 폭닥한 라쿤, 앙고라실을 기웃거리는 나는 '촉감이 다를 수 밖에 없다'며 여우털 목도리와 밍크 모피를 고집하는 사람과 뭐가 다를까? 동물 머리나 꼬리가 그대로 달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동물에서 왔다는 걸 체감하기 어려우니까 그냥 눈 감고 귀 닫고 소비하는 걸까?

     

    4. 윤리적으로 생산된 제품은 태생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가격을 낮추려면 대량 생산하며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더욱 빠르고 정확한 생산을 위해 공정을 효율화하는데에만 치중해야 하니까. 반면 동물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넓은 벌판을 갖추고, 비좁게 느껴지지 않도록 적당한 개체수만 유지하고, 동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채취 가능한 소량의 털만 모으면 비용도 많이 들고 팔 수 있는 상품의 양도 적을 수 밖에 없다. 보통 이렇게 실을 생산하는 로컬 브랜드는 대대손손 가족 단위로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의 양만 생산하고 그 이상을 무리해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품절도 잦고 가격도 높을 수 밖에. (오히려 이런 공정 과정을 생각하면 더 비싸지 않은 게 의아할 때도 있다. 한 마리 양이 일 년에 생산하는 실이 18키로나 되니까 그나마 이 정도 가격대가 유지되는 듯...) 이걸 이런 동물복지 브랜드의 약점이라고 말하기엔, 가격이 낮은 게 무조건 좋다는 자본주의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마찬가지로 언제 어디서든 살 수 있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양이 생산되고, 어디에서나 주문해서 다음 날 받아볼 수 있는 편리함이 과연 경쟁력의 지표가 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공정, 유통 과정의 윤리성과 가격, 편의성을 두고 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5. 이렇게 열심히 적고 있지만 애초에 동물들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농장에서 기르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개와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이 된 것 처럼, 양 역시 오랜 역사에 걸쳐 사육된 만큼 무조건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필요 이상으로 개체수를 늘리지 않고, 동물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생을 누릴 수 있을 환경이 충분히 갖춰져야 하겠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개와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돈을 목적으로 개와 고양이들을 교배시켜 '판매'하는 브리더들, 동물들을 마치 상품마냥 투명한 박스에 담아 전시해두는 업자들을 보면 화가 난다. 유기동물이 넘쳐나는 세상에 자신의 취향과 입맛에 맞는 동물, 돈이 되는 예쁜 동물을 사고 파려는 이기심의 산물이다. 그걸 보고 분노하는 것처럼 내가 평소 눈에 볼 수 없는 동물들의 권리와 복지도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6. 앞으로는 싸다는 이유로, 예쁘다는 이유로, 몇 달 동안 손도 못 댈 실을 쟁여두지 않으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뜨개질은 아주 느린 취미라서 작품을 하나 만드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그 작품에 필요한 실만 있으면 된다. (마음과 계획이 앞서서 수집가처럼 실을 자꾸 모으게 될 뿐...) 그래서 이제는 조금 비싸더라도 윤리적으로 생산된 실을 사고, 거기에 돈을 다 써서 다른 실을 못 사는 동안 작품 한 개 완성하는 데에만 집중하려 한다. 부득이 다른 실이 필요하다면 남이 이미 구매했지만 더 이상 쓰지 않는 실을 사던가 해야지.

     

    이상 나의 작은 결심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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