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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도기행
    2021. 12. 12. 01:39

    금요일에 전에 일했던 부서 분들과 밥을 먹기 위해 송도로 먼 길을 떠났다. 회사 다닐 때에는 새벽 여섯시 사십분에 셔틀을 타야하는 게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그때 타면 4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가 낮에 광역버스를 타니 2시간으로 늘어나는 기적… 그거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내 기준에서는) 꽤 일찍 일어나 비몽사몽한데 버스 잡아야해서 대충 옷 걸쳐입고 허겁지겁 나서는 경험을 했다.

    그러고 도착해서 만난 분들은 정말 반가웠지만 회사 건물과 송도는 반갑지 않더라. 송도는 정말 정이 가지 않는 동네다. 까마득한 고층 건물들이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고, 걸어서 어디를 가려고 해도 기본 15분은 잡아야 하는데 인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진심으로 아.무.도. 없는데 건물들은 어마어마하게 높고 보도도 넓고 깨끗하고 조용하니 마치 맵을 누비는 1인칭 게임 캐릭터가 된 것 같았다. 차를 가지고 있고 미래도시 같은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말에 시간을 내서 찾아갈 정도로 좋아하던데 난 아니었다. 오래된 것이 하나도 없는 동네는 정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원래는 바다였던 간척지에 세워진 동네라, 땅마저 새거라니…)

    물론 회사를 다닐 때에는 사원증 메고 그런 미래도시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면 내 자신이 좀 잘 나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때 내꺼인 줄 알았던 건 사실 잠시 빌렸고 퇴사와 함께 반납해야 했던, 내게 잘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내일이 똑같고,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하지만 ‘일은 일에 불과하니까’라는 이유로 다들 그냥 용인하는 가운데 나만 겉돌았다. 스트레스가 정말 극심할 때에는 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마치 몇 초 씩 딜레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고, 무언가 말하는 내 자신이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셔틀에 몸을 실으면 갑자기 시간이 거꾸로 가면서 어제가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 같았고, 날짜와 요일을 쉽게 까먹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약을 거하게 빤 사람들이 겪는 딱 그런 현상이었는데, 약은 기분이라도 좋게 만들어주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거의 직장인 판타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상적인 조합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결정한 걸로 보아 회사는 여러모로 내게 해로웠다. 그리고 건물을 보고 있으니 그때의 기분이 그대로 느껴져서 얼른 집에 가고 싶어졌다.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광역버스 배차 간격 때문에 그마저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내가 회사 생활에 대해 그리운 것.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월 25일에 들어오던 월급. 대기업 재직자의 높은 신용도 및 이를 반영하는 여유로운 대출 한도. 사내대부금. (진짜 꿀이었는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 벌써 1년 반 전 이야기다. 그때의 내가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또 생각보다 멀리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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