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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선량한 오해
    2021. 11. 7. 02:38
    3번 정도면 다 먹은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다른 게 아니고 틀린 거..가 아니라 다른 겁니다. - 강경 5번파 -



    서로의 의도가 곡해되기 참 힘들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오해가 일어난다는 걸 오늘 절절하게 깨달았다.

    사건의 발단은 며칠 전, 한 달 짜리 온라인 커리어 관련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하며 발생했다. 혼자 일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한데 모아 서로의 일에 대해 피드백하고 지지해주는 프로그램이라, 마침 사무실을 정리하고 혼자 집에서 일을 하기에 막막했던 나에게 딱 맞다고 생각해 서둘러 신청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뜻이 맞는 동료들을 여럿 만나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고 배워가는 과정이었고, 프로그램 소개글을 읽어보니 최소 5명 이상의 인원이 모여야만 개설되고 미달될 경우 아예 폐지된다고 적혀있어서 최소 네 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그렇게 신청을 마치고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기 며칠 전 참여자들이 다같이 이용하는 채팅방에 초대 되었는데, 주최자를 제외하고는 나까지 덜렁 두 명이 있어서 1차 당황. 하지만 초대 받은지 하루 밖에 되지 않았으니 더 모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성과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폴더에 접속해보니 총 참여자는 세 명인게 확실해져서 2차 당황. 최소 인원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그램이 개설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3차 당황. 내게 있어서 더 이상 아무런 실익이 없는 한 달이 될 텐데, 먼저 나가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폭파시켜버리는 눈치게임을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다가 오늘 취소 신청을 했다. 공지되어 있는 환불 규정에 따르면 시작일 하루 전까지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는데, 막상 신청하고 보니 담당자가 직접 검토 후 수동으로 환불을 해주는 방식이고, 공지된 대로 2영업일 이내에 진행된다고 하면 이미 프로그램이 시작된 뒤인데, 그럼 환불을 거절 당할 수도 있는 건가? 하고 쓸데없이 몇 수 앞까지 걱정을 해봤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의 선택을 변론하고자 취소 신청을 하면서 사유를 아주 구구절절하게 길게 썼는데, 읽는 사람 입장에서 공격당한다고 느껴질까봐 개설을 강행하게 된 이유부터 짐작해보기로 했다. 쓸데없이 궁예질을 해보자면 이런 사고의 흐름이 아니었을까?

    담당자: 이번에 세 명 밖에 신청을 안했네. 원래대로라면 폐강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신청해주신 분들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아예 진행을 취소해버리면 아쉬움(그리고 불만)이 크겠지? 그래, 아무래도 계획대로 개설하는 게 낫겠다.
    나: 애초에 공지된대로 5명 이상은 모여야 의미가 있는데... 인원이 적게 모였는데도 예상치 못하게 개설된 이 상황은 뭐지?

    이렇게 한 번 사고회로를 돌려보니 배려하려는 의도를 내가 놓쳤을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아, 그런 내용도 넣고 날카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표현을 다듬은 뒤 제출했다. (이 와중에도 교정 교열을 진행하는 직업병..)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나의 당황스러움과 실망이 묻어있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입장이니 딱히 아쉬울 게 없어서 내가 잘못을 했을 때에 비해 덜 ‘을’스럽게 작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까지 굳이 생각이 닿는 걸 보니 확실히 잘 시간이 됐다고 느끼고 그냥 카드 결제 취소 문자가 올 때까지 잊어버리기로 했다.

    이 9만 9천원 짜리 사건을 겪으면서 상대방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누군가에게는 폐강 가능성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멘트가 프로그램의 본질과 성격을 결정하는 조건으로 읽히기도 하고, 누군가가 배려한 것이 남에게는 당황과 불편을 끼칠 수도 있다. 나도 일을 하면서 고객들과 작업 조건에 대해 협상을 하다보면 이런 일이 정말 비일비재하다. (그나마 협상하는 단계에서 문제에 부딪히면 돈이 오고가기 전에 풀어보려고 할 수라도 있지, 묶인 상태에서 뒤늦게 오해가 터지면 그건 심각한 사고다.) 예를 들어 나는 업무용 카카오톡 계정만 사용하고 사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번호를 노출시키지 않는데, 작업을 의뢰하면서 이를 집요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다. 줌이라던가 보이스톡처럼 충분히 유선 상담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제안했는데도, 상담과 상관 없이 내가 번호를 주기 싫어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컴플레인을 해서 결국은 입금 받기 전 관계를 정리했다.

    그 사람이 댄 이유는 ‘나도 이력서, 자기소개서 다 넘겨주면서 내 개인정보 여과 없이 노출하는데 너는 안 주는 게 말이 되냐’였는데, 상대방이 반말로 무례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잔뜩 났던 화가 가라앉은 이후에 생각해보니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에는 이력은 물론이고 전화번호와 주소까지 적혀있으니 주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걸 핸들링하는 사람이 본인 정보는 절대로 까지 않겠다고 하니 신뢰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 혹은 중국에 개당 10원에 팔려나가는 개인정보를 ‘굳이’ 나에게서는 철벽 같이 지켜내려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이 고객과 끝장토론을 해야만 집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내가 과거에 스토킹 당하다가 번호를 바꿨던 썰을 풀면서 이제는 자택 주소 대신 사무실 주소를 기재하고, 안심번호를 고집하고, 출입명부에도 전화번호 대신 고유식별번호를 꼬박꼬박 적는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럼 업무용 폰을 만들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아도 카카오톡과 이메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데 ‘굳이’ 통신비 늘릴 이유가 없어 만들지 않았다면 납득이 될까? 아마 되지 않을 거다. 마치 치킨을 뜯다가 뼈 끝의 연골에 붙은 살점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알뜰하게 다 발라 먹는 사람은 통째로 버리는 사람을 보며 ‘다 먹지도 않고 왜 버리지?’라는 생각을 하고 후자는 전자를 보며 ‘그걸 굳이 왜 먹지?’라고 생각한다는 짤방과 다르지 않다. 그 ‘굳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누구 하나가 양보(혹은 무시)하지 않으면 치킨을 먹는 것과 같이 별 거 아닌 일에서도 평행선을 달리는 언쟁이 벌어질 수 있다.

    하물며 일은 어떠하랴. 위의 사례는 상대방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했기 때문에 쉽게 잘라낼 수 있었지만, 실제로 세상 멀쩡하거나 심지어 평균 이상으로 배려심이 깊고 친절한 고객과 예기치 못한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도망갈 수 없다. 그렇다고 내 성격 그대로 여과없이 내 자신부터 방어하기 바빠지면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 밖에 없다. 뼈아픈 시행착오를 몇 번 겪으면서, 그저 마케팅이나 서비스직 자기소개서 상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인 줄 알았던 ‘고객중심적 사고방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수준 정도로 나아졌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답하려 하지 말고, 심호흡 세 번 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이 상황을 보면 어떨까?’하고 고민한 다음, 무조건 죄송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기분이 나빴을 지점을 실토하며 답변을 시작하면 대부분 잘 해결이 된다는 걸 배웠다.)

    적다보니 월요일이 떠오르는 소재라 글을 맺고 싶어졌다. 어서 이 오해가 술술 풀려서 나의 9만 9천원이 승인 취소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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