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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의 직원도 아닌, 자영업자
    2021. 1. 28. 17:02

     

    퇴사하기 전, 생각해보셨나요? 이 사업자등록증의 무게를.


    나는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다. 근무형태만 보면 외주를 받아 ‘프리’하게 일하는 프리랜서지만, 고용형태를 보면 self-employed니까. 그리고 고용주로부터 돈을 받아 생활하는 근로소득자와는 다르게, 자영업자는 매달 일정한 돈이 들어올 거라고 보여줄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1년에 한 번 뿐인 종합소득세 신고 결과를 들이미는 것인데, 5월에 신고하기 전까지는(정확히 말하면 신고 결과가 나오는 7월 즈음까지는) 전년도 소득조차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올해 소득으로 대출도 받고 신용카드도 만들려면 내년 중순까지 기다려야 한다. (올해 소득이 그러기에 충분할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전세대출 대환 상담을 하러 은행에 갔을때 들은 얘기는 더 아팠다. 근로소득자는 근로계약 기간 내 매월 소득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월급을 몇 번 받지 않았어도 그걸 기반으로 연간 소득이 환산된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그렇지 않다. 전년도(운이 나쁘면 전전년도!)의 1년치 소득으로 모든 걸 증명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매월 버는 소득은,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등 쓸모가 없다. 아, 내 몸뚱이 하나로 사회에서 쓸모를 증명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같은 이유로 오늘 신청한 사업자용 신용카드도 발급 거절당했다. 매입 증빙을 간소화하려면 사업 목적으로 사용할 신용카드를 홈택스에 등록해야 하는데, 사업용 계좌와 연동되는 신용카드가 없어 아무 생각없이 신청했다. 살면서 신용카드 신청만큼 쉬운게 없었어서 발급이 어렵다는 전화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발급받으려면 현재 재직중인(?) 내 작고 귀여운 회사의 2019년도 소득증빙서류를 제출하란다. 사업자등록을 어제 해서 그런거 없다고 대답하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쪼그라들었다. 민망하다. 너무도.

     



    사실 오늘은 어제 신청한 사업자등록이 같은 날 처리되어 너무 기뻤다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출근해서 사업에 관련한 이런저런 절차들을 처리하다가 이렇게 됐다. 누군가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어제의 흥분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나도 안다, 찬물도 흥분도 다 내가 선택한 삶에서 온 거라는 걸. 선택으로 인한 모든 결과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택한 것이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리고 비록 사랑할 수는 없어도 안고는 갈 수 있다.


    난 누구의 직원도, 근로소득자도 아니다. 그래서 기쁘고,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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