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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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 행복의 기록gita 2021. 5. 9. 00:31
오늘 하루는 단 한 번도 힘들다, 싫다,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아침 열 시에, 평소보다는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그다지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그리고 개운했으니까. 일어나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니, 전날 새벽에 의뢰를 고민했던 고객이 마음을 정했는지 입금을 해두었다. 11만원. 주말에 일하기 너무 싫어서 평소보다 꽤 높은 견적을 불렀는데 의외로 응해주었다. 아.. 이래서 우리집 앞 케이크집 사장님이 주7일 일을 하는 건가. 아무튼 일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약속한 피드백을 보내주었다. 일어나 화장실을 갔을 때는 '요리해야 하는데, 하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R이 왠일로 파스타를 밖에서 먹자고 한다. 왠만해 먼저 외식을 제안하지도 않고, 그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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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gita 2021. 5. 7. 00:50
1. 내가 겪지 않은 것들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2. 문득 내가 쓰는 글이 나의 과거와 상처에만 묻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니까 다른 건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고, 이게 제일 아프고 제일 힘든 거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남들의 상처도 그 사람의 고유한 아픔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어렴풋이 얻게 됐다. 이를테면 내가 정말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 잃는 아픔. 그걸 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는 무력함을 막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치환할 수 밖에 없는 마음. 난 가족이 내게 항상 아프고 떼어내고 싶은 존재였어서, 또 다른 세계에서 내게 가족이 너무나도 소중한데 그게 사라져버렸다면 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픈 사람이 되었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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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초의 일상gita 2021. 2. 10. 18:48
한달쓰기 10일차, 매일 하나의 주제를 파고드는 글을 쓰려니 힘이 부친다. 그래서 오늘은 가볍게 요즘의 일상을 기록하는 걸로. 이번 겨울에는 두 번에 걸쳐 폭설이 내렸다. 처음엔 설레고 신났는데, 두번째엔 방심하다가 눈폭탄을 맞아서 기분이 축축하고 별로였었다. 이 라이언 눈사람을 만나고선 기분이 싹 풀렸지만 말이다! 정확한 비율로 귀랑 뽕주댕이를 만든 것도 놀라운데, 눈이랑 눈썹은 이걸 위해 일부러 만들 줄이야. 뜨거운 열정과 엄청난 귀여움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누군가는 눈보라에 투덜거리지만 누군가는 신나하며 이런 걸 만든다. 마음만 바꿔먹어도 이런 걸 만들 수 있다. 입학 10주년을 맞아 친한 동기와 함께 모교에 들렀다. 학교 안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들을 돌봐주는 동아리가 있는데, 이렇게 집도 지어 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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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지 않는 신에게, 기도합니다gita 2021. 1. 19. 03:08
할머니의 가슴이 헐떡거리듯 오르내리고 있었다. 산소호흡기가 공기를 불어넣는 것인지, 마지막 숨은 원래 저렇게 세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내 등을 떠밀며 인사드리라고 했지만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쁜 호흡과 흐느낌으로 소란한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밖에 없었다. ‘주님, 할머니를 부디 천국으로 인도해주세요.’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외가 식구들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어쩌다 들어간 중학교도 미션스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심은 자라나지 않았다. 분노와 우울에 절어 사는 어머니를 혼자서 견뎌내야 했던 세월 속에 신이 자리할 곳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내게 견딜 수 있는 시련만을 주거나, 무한한 사랑을 베풀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계획이라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