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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안에 책을 내야겠다
    gita 2022. 1. 15. 16:48


    작가가 되야겠다는 생각은 다섯살 즈음부터 했었다.
    돈이 되던 안 되던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은 이십대 중반 정도부터.
    독립출판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 근처를 기웃거린지는 이삼년 정도.
    하지만 난 아직도 블로그를 열었다가 폭파시키길 반복하며 독립출판의 'ㄷ'에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평소에는 경솔할 정도로 행동력이 넘치는 나인데 말이다.

    오늘 로로 작가님을 만나러 독립출판마켓 <책보부상>에 와서 그 이유를 깨닫게 됐다.
    나는 나의 책을 만드는 일을 너무도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논리적 완결성도 뛰어나고, 여러모로 아무런 결함이 없는 글을 만들어야만 출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런 생각 때문에 글을 쓸 때 짧게 쓰지 못한다. 어느 정도 분량이 나와야만 형식적으로나마 위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충이라도 아이디어를 잡고 글을 전개시키면서 그 주제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계속 점검하고, 마무리 할 때에는 꼭 누가 봐도 마무리 느낌이 나는 결론을 지어야만 만족한다. (그리고 한 이틀 뒤에 읽으면 너무 쓰레기같아서 비공개로 돌리거나 블로그를 없애버린다.)

    이걸 깨닫게 된 우스운 경험이 있는데, 한 독립출판사에서 주최한 자유 글쓰기 행사에 참여해서 즉석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글을 썼었다. 나는 주제를 받자마자 십 분의 시간을 정해 그 시간동안 글의 기승전결을 구상하고, 나머지 오십 분 동안 숨쉬지 않고 빼곡하게 글을 썼다. 손으로 글을 써야했고 나는 손이 느린 편이라 아슬아슬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나니 뭔가 내가 예술행위를 했다기 보다는 수시 논술을 본 느낌이라 진이 다 빠졌다.
    그러고 며칠 뒤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글을 모아 출판된 책을 받아서 열어보니 나처럼 길고 논리를 중시한 글을 쓴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앞에서부터 읽는데 시나 가벼운 블로그 포스팅처럼 짤막하게 쓴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단 두 문장만 적으신 분도 있었는데, 갑자기 나의 웅장한 논설문이 등장해서 그런 여유로운 분위기를 박살낸 게 너무 웃겼다.
    그걸 보면서 글을 쓸 때 조금 힘을 빼도 되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지.

    아무튼, 오늘 내가 구입한 두 권의 책은 글과 책에 대한 나의 강박에서 한참 벗어난 책이었다.
    제목을 달아 둔 하나의 글이 겨우 세 줄에 그치거나, 마침표도 없이 쓰다 만 듯한 문장으로 끝나기도 했다.
    글과 글 사이의 특별한 관계, 유기적인 연결 같은 것도 없었다. 그냥 특정한 시기를 지날 때 썼던 글들을 루즈하게 묶어둔 스크랩북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그런 비슷한 글들을 툭툭 뱉으면서 '이런 걸 언제 주제별로 모아서 각각 1천자 짜리 원고로 디벨롭하고, 기승전결에 따라 배치하고, 어떤 포인트를 잡아 마케팅하지, 이딴 글을 누가 읽지'하고 잔뜩 과로워할 때 누군가는 토막글이라도 일단 세상에 내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상업 작가로서 대성할 수 있을지 평가받기 위한 글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물성을 가진 책을 만들었고 이런 행사에 '작가'라는 타이틀로 참가했다.
    내가 오늘 책을 구입한 작가님은 심지어 영화 제작사에서 먼저 연락을 받아 책 내용이 단편 웹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하셨다.
    그 책의 주제는 내가 책으로 내고 싶은 주제와 매우 닮아있어서 더욱 놀랐다. 뭐라도 만들어서 일단 내놓아야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걸 실감했다.

    글쓰기가 새해 목표는 아니었다. 그건 거창한 목표를 세울 필요 없이 그냥 숨 쉬듯 하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은 올해 안으로 꼭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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